프랑스 루아르의 보석,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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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숴농소성  Château de Chenonceau 프랑스 루아르 여인들의 성…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 프랑스 5월은 생각보다 변덕스럽기도 하고 하루하루 온도와 공기가 달랐다. 신기하게 루아르 밸리(La Vallée de la Loire)의 중심부에 위치한 쉬농소(Chenonceaux) 마을로 향할 때는 빛이 너무 예뻐 설렘이 두 배였다. 루아르강의 지류, 셰르 강(Cher River) 위에 우아하게 걸쳐 있는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은 단순한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성을 넘어,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여인의 손길로 빚어진 ‘여인들의 성’이라 불린다. Château de Chenonceau 쉬농소 성 쉬농소 마을에서 성으로 향하는 길 쉬농소 성은 파리에서 기차로 약 2시간 남짓 떨어져 있으며, 투르(Tours) 역을 거쳐 셰르강 인근의 쉬농소 역에 도착하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성으로 이어진다. 15분가량 천천히 걷는 동안, 들판과 야트막한 농가 사이로 난 오솔길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처럼 고요했다. 성의 입구에 다다르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작지만 앤틱한 기념품점이다. 내부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프랑스 전통 문양이 들어간 접시, 와인잔, 향수 그리고 고운 실크 스카프들이 벽면 가득 채워져 있다. 친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수채화처럼 펼쳐진 쉬농소 성을 배경으로 한 화이트 스카프를 구입해 선물로 줬다. 성을 여행한 기념으로, 그리고 그날의 따뜻한 햇살을 담기 위해서라고… 여행마다 스카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잊지 않고 선물해주는 덕분에 항상 감동과 함께 감사하다. 셰르 강 위의 우아한 아치 ,쉬농소 성 쉬농소 성은 셰르 강 위에 아치형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성을 얹은 형태로, 유럽에서 보기 드문 건축 구조를 자랑한다.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강 너머 성을 바라보는 순간, 누구라도 숨을 멈추게 된다. 고요한 수면 위에 비친 성의 반영은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에 떠...

중세의 시간속으로 카르카손(Carcassonne) 콩달성(Château de Quéribus)



남프랑스 시간 여행 아를에서 카르카손, 콩달성까지 중세의 숨결을 따라가다

프랑스 남부의 여름은 여느 해변 도시의 활기찬 여정 못지않게, 묵직한 시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햇살 가득한 남프랑스를 뒤로하고 카르카손(Carcassonne)과 콩달성(Château de Quéribus)이라는 두 고성을 시작으로 북쪽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그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중세와 고대, 그리고 인간의 신념과 건축의 극한이 어우러진 ‘시간의 복원’이었다.


아를에서 출발하는 시간 여행의 시작

아를은 로마 유적과 고흐의 붓질이 깃든 도시로 유명하지만, 이곳을 기점으로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면 프랑스 남부의 진짜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 아를 동쪽으로 약 두 시간 반, 라발(Laval), 나르본(Narbonne)을 지나 카르카손으로 향했다. 풍경은 라벤더 밭과 와인 농장, 소박한 언덕 위 작은 마을들을 스쳐 지나가며 점차 중세의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의 살아 있는 박물관, 카르카손(Carcassonne)

고대와 중세의 경계에서 탄생한 요새

카르카손은 고대 로마인에 의해 도시의 기틀이 잡혔으며, 중세에는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 도시는 3km에 달하는 이중 성벽과 52개의 탑을 갖춘 방어 체계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중세 유럽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곽 외부의 모습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지만, 성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흡사 게임이나 영화 속 배경 속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이 시작된다. 성벽 내부의 도로는 자갈이 깔린 미로처럼 구불거리며, 양쪽에는 수공예 상점, 전통 음식점, 그리고 작은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고풍스러운 도시 한복판에서, 관광객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중세의 한 장면에 스며드는 ‘등장인물’이 된다.

건축의 정수와 복원의 논쟁

오늘날의 카르카손은 19세기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에 의해 대대적으로 복원되었다. 그가 사용한 복원 방식은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카르카손을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성곽 도시’로 재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공존하는 생 나자르 성당(Basilique Saint-Nazaire)은 비올레-르-뒤크의 미학적 야심이 집약된 걸작으로, 창을 통해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스러움과 숭고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카르카손의 축제는 역사와 문화의 다층적 재현

매년 여름, 카르카손에서는 ‘Festival de Carcassonne’이라는 대규모 문화예술 축제가 개최된다. 연극, 오페라, 재즈, 락 공연 등이 성곽 내부와 외부 광장에서 펼쳐지며, 단순한 공연을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된다. 특히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 밤에는 성벽 위로 장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데, 수천 개의 불꽃이 카르카손 성벽에 부딪혀 반사되는 장면은 감탄을 넘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처럼 카르카손은 단순한 중세 유적지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활발히 사용되고 살아 숨 쉬는 문화공간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중세 복장을 입은 연기자들이 마을을 활보하며, 아이들과 관광객에게 검술 시범과 옛날 놀이를 시연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이 풍경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혹적 경험이었다.



콩달성(Château de Quéribus) 뾰족한 지붕은 고독의 성채

카타리파의 마지막 저항지

카르카손에서 1시간 30분가량 남서쪽으로 이동하면, 피레네 산맥 자락의 고지대에 솟아 있는 콩달성을 만날 수 있다. 해발 약 728m의 외딴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요새는, 카타리파(Cathars)의 마지막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카타리파는 13세기 초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어 알비 십자군의 탄압을 받았으며, 수많은 신도들이 남프랑스 산악지대로 도망쳐 성채를 요새 삼아 최후까지 저항했다.

콩달성은 그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버텨낸 성으로, 1255년 프랑스 왕실군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고요하고 처절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성에 도착하면, 이 외딴 공간에서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립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흔적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과 맞닿은 건축, 절벽 위 요새의 위엄

콩달성은 그 건축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인공적인 미화 없이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축조된 이 요새는, 절벽의 암석과 벽이 마치 하나의 구조물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경로는 꽤 가파르지만, 그만큼 도달했을 때의 전경은 압도적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탑 꼭대기에서 피레네 산맥의 능선과 지중해 방향의 평원이 한눈에 펼쳐지며, 이곳이 왜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성 내부는 매우 간결하다. 감시탑, 회의실, 물 저장고 등 최소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돌로 이루어져 있다. 장식은 없지만 그만큼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다.

고요함과 철학이 깃든 공간

콩달성은 화려한 관광 시설이나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방문객은 적막한 풍경 속에서 고요히 걷고, 바람 소리와 자신의 발자국만이 귀를 채운다. 역사적 무게와 자연의 위엄, 그리고 인간의 신념이 한 데 어우러진 이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사색의 공간이 된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살짝 흐린날이라 오히려 콩달성의 알수없는 저항의 시간이 숙연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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