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와 생떼밀리옹 와인, 까눌레의 추억 Bordeaux , Saint-Em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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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이라면 보르도는 버킷리스트 여행지에 꼭 있을 도시다. ‘와인의 수도’라는 이름도 있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심 풍경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보르도와 그 인근 생떼밀리옹은 와인보다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라는것을. 보르도, 물과 도시가 만나는 고전적인 품격 파리나 마르세유처럼 분주하지도 않고, 니스처럼 요란하지도 않은 도시. 보르도의 중심가는 ‘물의 거울(Miroir d’Eau)’로 유명한 론 강변과 이어져 있는데, 이 물 위로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반사되어 있는 모습은 정말 그림 같았다. 단순히 관광명소가 아니라 시민들과 아이들, 커플,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머물고 걷는 곳이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Place de la Bourse(증권거래소 광장)’와 ‘그랑 테아트르’ 같은 대형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도시가 과거 대서양 무역항으로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보르도 와인의 다양성과 품격 보르도를 여행하면서 와인을 이야기하지 않기는 어렵다. 현지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와인 메뉴부터 펼치게 된다. 그런데 그 리스트가 워낙 다양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보르도 와인은 크게 좌안(Left Bank)과 우안(Right Bank)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 메독(Médoc), 생떼밀리옹(Saint-Émilion), 포므롤(Pomerol), 그라브(Graves) 등 수많은 지역으로 다시 세분화된다. 직접 와인을 마시며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바로 포도 품종의 조화였다. 좌안 지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중심이 되어 타닌감이 강하고, 구조적인 맛이 인상 깊었다. 한편, 생떼밀리옹 등 우안에서는 메를로(Merlot) 비율이 높아 부드럽고 과실향이 더 풍부한 와인이 주를 이뤘다. 보르도의 와인은 단일 품종보다는 블렌딩을 통해 풍미를 조율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하...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렸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영혼으로 쓴 편지 Vincent Willem van Gogh



고흐와 동생 테오, 영혼으로 나눈 편지들

“나의 사랑하는 테오, 오늘은 또다시 너에게 글을 쓰고 있어. 어쩌면 이 편지들이 내 마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어.”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를 ‘불멸의 화가’라 부릅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수많은 미술관에서 반짝이며,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영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그의 예술 이면에 숨겨진, 한 인간으로서의 고흐를 잊곤 합니다.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붓을 들었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으며, 끝내 자기를 파괴하는 길을 걸었던 사람.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입니다.

한 형제의 이야기, 그러나 그 이상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는 단순한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육체를 넘어선 영혼의 연결, 말보다 깊은 공감이 있었습니다. 형 빈센트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삶에 대한 열정과 불안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반면, 동생 테오는 언제나 묵묵히 그 곁에 있었습니다. 그의 예술을 믿어주었고,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었으며, 무엇보다 빈센트를 ‘이해’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600여 통의 편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 편지들은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해 준 기둥이었습니다. 고흐의 붓 끝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결국 테오에게 쓴 편지들이었습니다.

글이 곧 그림이었던 사람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는 글로도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구상 중인 작품을 스케치처럼 그려 넣곤 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색감과 감정을 설명하면서, 붓이 닿지 못하는 부분을 언어로 채웠습니다.

1888년의 어느 날,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적었습니다.

“노란 해바라기들을 그리고 있어. 마치 태양의 분신처럼, 생명력으로 가득한 꽃들이야.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밝은 색일지도 몰라.”


그는 해바라기 그림을 단순히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빛’을 찾고자 했던 자신의 갈망, 어두운 현실 속에서 단 하나의 희망을 붙잡고자 했던 고흐의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마음을 세상 누구도 아닌, 오직 테오에게만 전했습니다.

삶이 고통뿐일 때, 편지는 안식처가 된다

고흐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빈번한 우울과 분노, 자해와 자책 사이에서 그는 늘 흔들렸습니다. 아를의 노란 집에서 귀를 자르고 입원하던 순간에도, 그는 테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토록 고장 난 사람인지’를 설명하려 했고, 자신이 여전히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믿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편지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테오라는 존재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세상이 등을 돌려도, 테오만은 결코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믿음. 그것이 고흐가 끝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테오 없는 빈센트, 빈센트 없는 테오

안타깝게도 고흐는 1890년, 불과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단 6개월 후, 테오 역시 병과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마치 빈센트 없는 세상은 테오에게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현재 고흐와 테오는 네덜란드 오스테르하우트의 오베르쉬르르와즈 묘지에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생전에 그렇게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이제 말이 필요 없는 영원한 침묵 속에서 함께합니다.

편지, 예술보다 더 깊은 유산

오늘날 수많은 미술관에서 고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의 예술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편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 편지에는 그림 그 자체보다도 더 생생한 고흐의 삶이, 그의 고통과 사랑이, 예술에 대한 절박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예술가의 결과물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고흐의 경우, 그의 ‘편지’는 또 다른 작품입니다. 살아 숨 쉬는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붓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은 오직 한 사람, 테오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고흐와 테오의 편지는 단지 두 형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갈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가 흔들릴 때 붙잡아주는 사람, 세상이 등을 돌려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 그들의 편지는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예술보다 더 깊은 사랑의 유산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도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진심 어린 몇 줄이,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꿔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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