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와 생떼밀리옹 와인, 까눌레의 추억 Bordeaux , Saint-Emilion
와인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이라면 보르도는 버킷리스트 여행지에 꼭 있을 도시다. ‘와인의 수도’라는 이름도 있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심 풍경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보르도와 그 인근 생떼밀리옹은 와인보다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라는것을.
보르도, 물과 도시가 만나는 고전적인 품격
파리나 마르세유처럼 분주하지도 않고, 니스처럼 요란하지도 않은 도시.
보르도의 중심가는 ‘물의 거울(Miroir d’Eau)’로 유명한 론 강변과 이어져 있는데, 이 물 위로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반사되어 있는 모습은 정말 그림 같았다. 단순히 관광명소가 아니라 시민들과 아이들, 커플,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머물고 걷는 곳이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Place de la Bourse(증권거래소 광장)’와 ‘그랑 테아트르’ 같은 대형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도시가 과거 대서양 무역항으로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보르도 와인의 다양성과 품격
보르도를 여행하면서 와인을 이야기하지 않기는 어렵다. 현지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와인 메뉴부터 펼치게 된다. 그런데 그 리스트가 워낙 다양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보르도 와인은 크게 좌안(Left Bank)과 우안(Right Bank)으로 나뉘고, 그 안에서 메독(Médoc), 생떼밀리옹(Saint-Émilion), 포므롤(Pomerol), 그라브(Graves) 등 수많은 지역으로 다시 세분화된다.
직접 와인을 마시며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바로 포도 품종의 조화였다. 좌안 지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중심이 되어 타닌감이 강하고, 구조적인 맛이 인상 깊었다. 한편, 생떼밀리옹 등 우안에서는 메를로(Merlot) 비율이 높아 부드럽고 과실향이 더 풍부한 와인이 주를 이뤘다.
보르도의 와인은 단일 품종보다는 블렌딩을 통해 풍미를 조율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하나의 병 안에서 여러 포도의 장점을 조화롭게 담아낸다는 점이 이 지역 와인만의 매력인 듯하다.
까눌레, 캐러멜과 럼향의 달콤한 인상
보르도에서는 와인만큼 유명한 디저트가 하나 있다. 바로 ‘까눌레(Canelé)’. 처음 먹었을 때는 생김새가 작고 단단해서 그저 머핀 같은 식감일 줄 알았다. 그러나 첫입을 베어 문 순간, 겉은 바삭하고 캐러멜 향이 퍼지며, 속은 바닐라와 럼 향이 녹아든 촉촉한 커스터드처럼 부드러웠다.
까눌레의 유래는 18세기 수도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남은 노른자를 활용해 디저트를 만든 것이 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 게다가 카리브해와의 무역을 통해 수입된 럼과 바닐라가 결합되어 보르도 특유의 풍미가 더해졌다.
현지에서는 Baillardran(바이야르랑)과 La Toque Cuivrée(라 토크 뀌브레)라는 두 브랜드가 유명하다. 가게마다 굽기 정도나 크기에 차이가 있어, 다양한 까눌레를 시도해보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되었다.
생떼밀리옹, 돌담 안의 중세와 와인의 마을
와이너리 방문을 위해 보르도 근처 생떼밀리옹을 방문하기로 했다. 정말 기대되는 생떼밀리옹 방문은 이동 중에도 넓은 포도밭과 소박한 마을들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며 점점 더 시골스러운 풍경으로 바뀐다. 생떼밀리옹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것은 공기의 온도였다. 더 조용하고, 더 단단하고, 더 고요했다.
이 마을은 8세기 수도사 에밀리옹(Saint Émilion)에서 유래된 이름을 갖고 있다. 그가 이곳에 은둔하여 기도하던 동굴이 현재는 지하 교회가 되었고, 마을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형 덕분에 지하 동굴과 저장고가 풍부하다. 덕분에 이 지역 와인은 지하에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숙성될 수 있다는 이점도 갖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고, 천천히 골목을 걷다 보면 바닥의 자갈 소리와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교회, 광장, 카페, 그리고 이름 없는 샤토들(와이너리)이 이어지는 거리 위에서 와인 한 잔을 손에 쥐고 앉아 있으면, ‘지금 이 순간이 여행의 핵심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와이너리 방문, 직접 맛보는 떼루아의 차이
생떼밀리옹에는 ‘Grand Cru Classé’라 불리는 공식 분류 제도를 갖춘 고급 와이너리가 많다. 일부 샤토는 사전 예약 없이도 입장과 시음이 가능했으며, 영어 가이드를 통해 떼루아(terroir)와 블렌딩 방식, 숙성법까지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건, 지하 저장고를 직접 내려가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천장이 낮고, 공기 중에 와인의 향이 스며든 듯한 그 공간은 마치 한 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였다. 시음 때 비교했던 메를로 100% 와인과 메를로·카베르네 프랑 블렌딩 와인의 차이는 확실했다. 전자는 부드럽고 과일향이 풍부했으며, 후자는 약간의 스파이스 향과 함께 더 복합적인 여운을 남겼다.
추천해준 와인을 몇병 구입하고 시음도 하고 오래된 레스토랑에 들러 간단하게 식사와 곁들이는 또 한잔의 와인은 생떼밀리옹 여행의 최고 추억이 되어 남았다.
맘에 드는 와인을 발견한다면 세계 어디든 배송도 가능하다.
보르도와 생떼밀리옹은 와인을 위해 방문했지만 도시의 우아함 속에서 근대 유럽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돌담과 포도밭 사이에서 고요한 시간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친 와인과 까눌레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었다. 오랜 역사와 자연, 문화가 빚어낸 결과물이었고, 그 맛을 통해 이 지역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을 수 있었던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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