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만난 시장과 성소뵈르 대성당 Cathédrale Saint-Sauveur

엑상프로방스 여행의 묘미는 시장투어!

남프랑스의 햇살이 따뜻하게 도시의 외벽을 물들이는 아침,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구시가지로 걸음을 옮겼다. 이 도시는 그림 같은 라벤더 밭과 세잔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진짜 매력은 바로 사람들의 삶이 촘촘히 녹아든 골목 곳곳의 시장들과, 고요하고도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소뵈르 대성당(Cathédrale Saint-Sauveur)에 있다.

시장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엑상프로방스를 단순한 관광 도시로 기억하는 이들은 진정한 이곳의 매력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엑상은 시장의 도시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도시 곳곳의 광장과 좁은 골목에서 다채로운 시장이 열린다. 특정 요일마다 정해진 테마에 따라 상인들이 부스를 열고, 신선한 식재료, 지역 특산품, 수공예품, 앤티크, 심지어 미술작품까지 다양한 품목이 거래된다. 이 시장들은 엑상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도시의 심장이다.

식품 시장 (Marché Alimentaire)

대표적인 장소는 Place Richelme(리슐리외 광장). 이곳은 매일 아침 식료품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엑상 시민들의 식탁을 책임지는 필수 방문지다. 갓 수확한 과일과 채소, 생생한 색감의 올리브, 다양한 향의 프로방스 허브, 정성스럽게 만든 수제 치즈와 햄, 그리고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가 질서 있게 놓인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하나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감동마저 든다.

 꽃 시장 (Marché aux Fleurs)

Place de l’Hôtel de Ville(시청 광장)에서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꽃 시장이 열린다. 프로방스의 햇빛을 머금은 수국, 해바라기, 라벤더, 양귀비꽃이 골목마다 퍼지며 진한 향을 남긴다. 특히 봄과 여름에는 마치 꽃의 정원 속을 산책하듯 느껴질 만큼 공간이 생기 넘친다. 이 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장소로도 유명한데, 축제나 기념일을 앞두고 꽃다발을 사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마침 성소뵈르성당을 가기전에 꽃시장을 만나 예쁜 장미 한다발을 저렴하게 구입했고 성모마리아에게 조용히 헌화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꽃을 두고 가는 모습도 또다른 감동이였다.

앤티크·브로칸트 시장 (Marché aux Antiquités et Brocante)

Place des Prêcheurs(프레셰르 광장)과 Place de Verdun(베르댕 광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 앤티크 시장이 이목을 끈다. 오래된 은촛대, 낡은 레이스 커튼, 시대를 지나온 도자기와 주석 접시 등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물건들이 흥정을 기다린다. 이곳은 수집가뿐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찾는 이들에게도 인기 있는 공간이다. 골목을 거닐다 무심코 들어선 이 시장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기묘한 감정을 맛볼 수 있다.

섬유 및 수공예품 시장 (Marché des Tissus et de l’Artisanat)

주말 아침이면 구시가지 구석구석, 특히 Place des Cardeurs 주변에서는 리넨, 수공예 비누, 천연 향초, 전통적인 프로방스 패턴의 패브릭을 판매하는 부스들이 등장한다. 이 시장은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현지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손으로 수놓은 테이블보, 지역 장인의 도자기 접시, 감성 가득한 라벤더 파우치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어,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선 ‘작은 예술품’을 발견하게 된다.

옷과 잡화 시장 (Marché aux Vêtements et Accessoires)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Cours Mirabeau(미라보 거리)를 따라 옷과 액세서리, 가방 등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다. 이 거리의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시장은 패션과 실용성, 지역 감성이 조화를 이룬다. 프랑스식 마르셰 플레르(marché de plein air)의 정수를 느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현지 주민들에게도 인기다.

성소뵈르 대성당, 엑상의 영적 중심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고개를 들면, 고요하고 단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소뵈르 대성당(Cathédrale Saint-Sauveur)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의 활기가 머무르는 골목 끝에서, 시간과 신앙이 공존하는 이 성당은 엑상프로방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대성당은 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여러 시대에 걸쳐 확장되고 개축되어 지금의 복합적 양식을 띠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공존하는 이례적인 구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외관은 위엄 있고 단단하지만, 성당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차분하고 은은한 채광 아래에서 장엄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특히 15세기 고딕 양식의 제단화 ‘떨어지는 아담의 나무(L’arbre de Jessé)’는 방문객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성경 속 인물들이 나무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종교 미술의 걸작으로, 엑상의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 유산이다.

성당 오른편에는 초기 기독교 시절의 세례당도 존재하며, 이는 프랑스 내에서도 보기 드문 고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원형 기둥과 모자이크 흔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중첩은 이 공간이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선 ‘영적 장소’임을 보여준다.

시장과 성당, 일상의 조화

엑상프로방스를 여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시장의 활기와 성당의 정숙함이 도시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는 빵과 치즈를 사고, 오후에는 성소뵈르 성당에서 잠시 머물며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번잡함 속에서도 사색의 여유를, 역사적 공간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엑상프로방스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진짜 도시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