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거리에서 세잔의 아뜰리에까지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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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 |
생폴 드 방스로의 초대
4년전 친구들과 방문했던 생폴드방스…
그때와 같은 듯 다른 아침이었다. 부드러운 지중해 빛이 창문 너머 조약돌 골목으로 흘러들고, 생폴 드 방스의 이른 공기는 뜨거운듯 싱그럽다. 이 골목 한 조각 한 조각이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여, 여행자의 발걸음은 말없이 조심스레 내딛어진다. 바람조차도 이 마을에서는 여유를 입고 지나간다.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한 페이지를 펼치듯,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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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atic |
Obatic 테라스 봉골레 가지파스타
테라스에 자리를 잡자, 따스한 햇살이 테이블 위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윽고 직원이 봉골레 파스타와 가지파스타 한 접시를 조심히 올려놓는다. 절대 화려하지 않다. 소박하면서 그냥 기본이 충실할뿐인데 와인과 여행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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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atic |
남편과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며 무언의 만족이 전해졌다. 한 사람의 여정이란 단순히 여행지의 풍경 너머에 있는 감정의 흐름이자, 작은 접시 하나에도 스며드는 우연한 행복임을 실감했다.
낮은 담장너머 미세한 바람이 무더운 더위까지 살짝 비껴가게 해주며 마치 영화속 한장면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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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CES ARTISANALES 젤라또 |
GLACES ARTISANALES 달콤함의 미학
점심을 마친 우리는 테라스에서 나와, 슬슬 걷다 보면 금세 도달할 수 있는 GLACES ARTISANALES 앞에 섰다. 그곳은 마치 동화 속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채광 좋은 실내에 각양각색의 젤라또가 곱게 진열되어 있었다.
수많은 맛 중에서도 나는 상큼한 레몬맛으로 골랐다. 남편은 진한 피스타치오의 고소함 위에, 솔티드 카라멜의 은은한 짠맛이 어우러진 젤라또….
부드럽게 녹아들며 스르륵 퍼지는 여운은 아마도, 이 여행이 단순한 외출이 아닌 ‘기억’으로 자리잡게 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소리 없이 고요한 만족을 나눴다.
골목 산책 돌담과 돌바닥의 선명한 느낌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채 우리는 골목길로 다시 들어섰다. 돌담이 양쪽으로 늘어선 좁은 길, 알수 없는 꽃화분들과 아담한 가게들이 채워져 있다.
작은 화랑들의 문 앞에서 우리는 발길을 붙들었다. 유화 물감이 두텁게 쌓인 캔버스, 붓 끝이 남긴 흔적, 전시장 내부에 은은히 흐르는 대화와 호흡이, 여행자를 한층 더 깊은 감각 속으로 초대했다.
쿠키와 크로와상 따뜻한 빵 한 조각의 온도
골목시장 한 켠에는 작은 베이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제 바구니에 담긴 크로와상과 쿠키들이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 크로와상, 오늘 아침 구웠어요.”
그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크로와상 한 봉지, 쿠키 한 통을 손에 넣었다. 목조 벤치에 앉아 크로와상을 나눠 먹던 순간, 껍질은 바삭했고 속은 폭신하며, 황금빛 버터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쿠키는 견과류와 초콜릿이 어우러져 씹을수록 고소함이 진하게 퍼졌다.
화가들의 아틀리에 붓끝에 스미는 마을
빵을 먹으며 골목을 따라 더 내려가니, 작은 건물 안에 화가들의 아뜰리에 골목이다. 문의 문턱은 열려 있었고, 우리는 조용히 발을 들였다. 4년전 이골목 어디선가 그림 한점을 구입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젤 앞에 선 화가의 집중된 시선, 캔버스 위에 스미는 색채의 결, 그리고 붓이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모두, 그 자체로 ‘이곳의 하루’였다.
한 작가가 말했다.
“이곳 먼지를 물감에 섞으면, 이 마을의 공기도 담을 수 있어요.”
그 말이 은유처럼 들렸고, 우리는 덧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먼지조차 이곳의 정서라는 놀라운 그의 표현이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소소하지만 깊은 기억의 연속
다시 길을 따라 내려오니 작은 와인샵 앞에서 올리브 시음을 권했다. 짭짤하면서도 살짝 쌉싸래한 맛이 고즈넉히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어디선가 기타 선율이 스며들었고, 우리는 그를 따라 노래 없는 하모니 속으로 걸었다.
담장 위에 핀 꽃들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정원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우리를 환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평온함이야말로, 이 여행의 완전한 결말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 Obatic 테라스를 스치듯 지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여기, 이 순간에 머물러 있음이 주는 기쁨, 그리고 이 말이 오늘의 나를 가장 잘 대표한다고 느꼈다.
생폴 드 방스는 거창하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사소한 순간이 모여 삶에 고요한 울림을 전했다.어쩌면 여행이란, 특별한 장소를 찍는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나를 벗고, 작은 것들 속에 스며드는 시선이 아닐까.
생폴 드 방스에서 보낸 이 하루가 미래의 힘든 어느날 나에게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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