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쌀국수, 납작복숭아 하나, 그리고 장바구니 한가득
지중해를 따라 흐르는 바람, 햇살이 부서지는 골목, 어깨에 살짝 내려앉는 소금기 섞인 공기. 프랑스 니스(Nice)는 도착과 동시에 사람을 느슨하게 만든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거리의 사람들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는 듯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남편과 함께 니스에서의 하루를 아주 소소하게, 하지만 특별하게 보내기로 했다. 그 하루는 거창한 명소 방문보다는 시장 구경, 현지 식사, 그리고 마트에서의 쇼핑으로 채워졌다. 어떤 도시든 그날그날의 ‘생활’을 살아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는 걸, 니스에서 새삼 느꼈다.
오후의 햇살 아래, 살레야 시장에서 만난 프랑스 여름
여행자의 아침은 언제나 조금 늦다. 오전 11시, 우리는 브런치를 간단히 해결한 뒤 살레야 시장(Cours Saleya Market)으로 향했다. 니스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이 시장은 꽃, 과일, 채소, 빵, 가공식품 등 다양한 먹거리가 모이는 니스의 부엌 같은 공간이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풍경은 화려했다.
노란색, 파란색, 주황색 파라솔 아래에는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사이 상인들의 프랑스어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현지인들과, 흥미진진한 눈빛을 가진 여행자들이 서로 섞여 시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 장면 같았다.
납작복숭아 !!! 여름의 맛
두번째 남프랑스 여행을 오면서 남편에게 꼭 맛보여주고 싶었던 납작복숭아(Pêche plate).
보통 복숭아보다 납작하고 동글넓적한 모양의 이 과일은 프랑스 여름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주자다. 껍질이 붉게 익은 복숭아를 시식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거 진짜 달다.”
과즙이 폭발하듯 입안에 퍼지고, 복숭아 특유의 신맛 없이 깔끔한 단맛이 오래 남았다. 두세 개쯤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 여행내내 눈에 띄면 무조건 사먹은 최애 과일이다.
크로아상과 오이샐러드
시장 한편에는 빵 코너도 있었는데, 바삭한 결이 살아 있는 크로아상은 보기만 해도 고소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갓 구운 크로아상 두 개를 골라 넣고, 신선 채소 코너에서 오이 샐러드(Salade de concombre)도 하나 챙겼다. 오이는 얇게 저며져 있고, 가벼운 비네그레트 드레싱과 함께 담겨 있었다. 더운 날씨에 딱 어울리는 가볍고 상큼한 오이샐러드는 한국이 와서도 제일 다시 만들어 보고 싶은 맛이다.
시장에서는 무작정 많이 사기보다, 당장 오늘 먹을 것들 위주로 가볍게 사는 것이 좋다. 납작복숭아, 크로아상, 오이샐러드. 이 세 가지로 우리는 니스의 여름을 맛볼 수 있었다.
까르푸(Carrefour)에서 바게뜨와 물 생활형 쇼핑의 즐거움
살레야 시장을 나서니, 생각보다 햇볕이 강했다.
바게뜨와 생수를 추가로 사기 위해 근처의 Carrefour(까르푸) 마트로 향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마켓으로, 현지 물가를 체감하기에도 좋고, 생활용품을 구매하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저렴하고 맛있는 바게뜨
바게뜨는 프랑스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단돈 1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구운 지 얼마 안 된 바게뜨가 길게 쌓여 있었다.
남편의 최애 빵은 바게뜨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쫀한 이 빵은,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아도 한 끼 식사가 된다.
생수와 장바구니 여행 중 필수템
니스를 비롯한 유럽 남부의 여름은 생각보다 덥고 건조하다.
생수는 하루에 1.5리터 이상 챙겨야 할 만큼 필수품.
마트에서는 대용량 생수를 6병 세트로 묶어 2~3유로에 팔기 때문에, 숙소 냉장고에 미리 채워두면 하루가 훨씬 편해진다.
여기에 장바구니도 꼭 챙기자. 프랑스 대부분의 마트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마트 입구에서 팔거나 자신이 챙겨온 장바구니가 없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모나코에서 구입한 에코백을 요긴하게 썼다.
저녁은 Pho38 니스에서 만난 따뜻한 국물
쇼핑을 마치고 잠시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향한 곳은 Pho38.
니스 중심부, Rue de France 거리 중간에 자리한 이 베트남 음식점은, 니스에서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 있는 쌀국수 맛집이다.
쌀국수의 위로
나는 소고기 쌀국수를, 남편은 볶음밥을 주문했다.
맑고 깊은 육수, 얇게 썬 고기, 향긋한 고수와 숙주의 조화는 우리가 그리워하던 동남아의 맛 그대로였다. 유럽 여행 중 아시아 음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오는데, Pho38의 쌀국수는 그 그리움을 따뜻하게 달래준다.
국물 한 모금에 묵직한 안도감이 내려앉고, 고슬고슬한 볶음밥은 익숙하지만 이국적인 풍미로 입맛을 돋웠다. 너무 맵지도, 짜지도 않아 오히려 유럽 음식에 지친 위장에게 좋은 쉼표가 되어준다.
Asiana Supermarché 니스 한복판에서 만난 작은 한국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Asiana Supermarché.
니스 기차역 근처에 있는 이 작은 아시안 마트에는 한국 식품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태국 제품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컵라면과 김치
우리는 신라면 몇 개 담고 냉장 코너에서 포장김치도 구입했다.
가격은 한국보다 비쌌지만, 그 가치는 충분했다. 낯선 도시에서 컵라면과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식사 이상의 심리적 위안이 된다. 이 마트에는 고추장, 된장, 각종 라면, 참기름, 라이스페이퍼, 스리라차 소스 등 아시아의 맛이 가득했다.
호텔에서 간단하게 야식이나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싶을 때 이곳은 최고의 장소다.
호텔로 돌아와, 작은 피크닉을 즐기다
호텔로 돌아와 발코니 테이블 위에 오늘 장 본 것들을 하나하나 펼쳤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김치는 작은 접시에 덜었다.
크로아상은 반으로 갈라 바게뜨와 함께 곁들이고, 오이 샐러드는 상큼한 사이드 디시가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 이런 다국적 소소한 한끼가 오히려 힐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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