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거리에서 세잔의 아뜰리에까지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

니스에서 생폴드방스로, 샤갈의 무덤 앞에서 멈춘 마음
남프랑스의 여름은 뜨겁지 않다. 햇살은 충분히 찬란하지만, 그 열기보다 더 먼저 다가오는 건 푸른 바다와 풍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날도 그랬다. 니스의 아침은 눈부셨고, 남편과 나는 작은 렌터카 하나에 짐을 실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생폴드방스. 아티스트 마르크 샤갈이 말년에 머물며 붓을 놓았던, 그리고 결국 잠든 그곳이었다.
출발, 느리게 달리는 여행의 시작
니스 시내는 여느 프랑스 도시처럼 복잡했다. 아침 출근길, 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빠르게 지나치는 이방인들 사이를 우리는 남프랑스 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A8 고속도로는 속도를 낼 수 있는 길이었지만, 우리에겐 그저 풍경을 누리는 통로였다. 도로 오른편으로는 지중해가 펼쳐졌고, 왼편으로는 소나무 숲과 올리브 나무가 언덕을 감쌌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Cagnes-sur-Mer 출구를 빠져나와 RD436번 국도를 타고 오르막길에 들어서니, 길은 조금씩 구불구불해지고 차창 밖 풍경은 동화책 속 그림처럼 바뀌었다.
생폴드방스 입성, 마을 외곽 주차하기
중세 시대의 숨결이 남아 있는 마을이기에, 생폴드방스 안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순 없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차량은 통제되고, 여행자들은 외곽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걸어서 성곽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indigo주차장이였지만 여기보다 저렴한 시립공영주차장이 1시간에 2.5유로, 넉넉히 세 시간 주차하고도 부담 없는 요금이라고 한다. 참고로 저녁 7시 이후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니, 해 질 무렵 방문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조건이다. 대부분 주차장이 성곽 입구까지는 도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발 아래에 자갈이 느껴지고, 고개를 들면 오래된 돌담과 창문 틈새마다 가득한 제라늄 꽃들이 반겨준다.
중세 시간 속으로 스며들다
생폴드방스는 큰 마을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골목 하나하나에 시간이 고요히 스며들어 있다. 작은 갤러리와 아틀리에, 수제 향수 가게와 세라믹 숍, 어디를 들어가도 상점 주인의 손끝에서 예술이 자라고 있었다. 정적이 아니라, 낮은 숨결로 이어지는 생명력. 그곳이 바로 이 마을의 매력이었다.
돌길을 걷다 보면 유명한 La Colombe d’Or 호텔이 나타난다. 샤갈, 피카소, 자코메티, 미로…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을 남기고 간 곳, 당시엔 그림을 돈 대신 걸어주곤 했다고 한다. 지금도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엔 그들이 남긴 진짜 작품들이 걸려 있다. 미술관이 아닌 공간에서 만나는 예술은, 조금 더 가깝고 조금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하루 묵어 가기를 고민했지만 니스를 선택했는데 다시보니 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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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Chagall’s Grave Tombe Marc Chagall |
샤갈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
마을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난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다. 약간의 경사를 따라 올라가면 하얀 벽과 녹색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작은 성당, Saint-Michel Chapel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 언덕 위에 자리한 공동묘지.
마르크 샤갈의 무덤은 언덕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흰 대리석 묘비에 새겨진 ‘Marc Chagall’이라는 이름. 그의 아내 바바와 함께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그 앞엔 사람들이 올려놓은 작은 조약돌들이 수북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그것은 기억의 표식이자 존경의 의미였다.
내게 샤갈은 늘 붉고 푸른 꿈의 화가였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풍경, 머리 위로 떠다니는 연인들, 염소를 타고 하늘을 나는 사람들. 그 비현실적 세계가 이렇게 조용한 언덕 위에서 완결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아름다웠다. 조심스럽게 주운 작은 돌 하나를 묘비 위에 얹었다. 손끝에 묘한 감동이 전해졌다.
마에 재단, 예술의 또 다른 자락
공동묘지를 내려와, 조금 더 언덕길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보석이 있다. 바로 Fondation Maeght(마에 재단)이다. 현대미술의 보고로 불리는 이곳은 건물 자체가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에는 자코메티의 조각들이 어우러져 있고, 미로의 조형물은 아이들마저 끌어당긴다.
마을 끝, 햇살과 분수
다시 마을 중심으로 내려왔다. 작은 광장 분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행복한 전세계 관광객이 분주하게 골목을 채우고 있다.
“여기, 다시 오고 싶다.”
두번째 방문이지만 벌써 그리웠다.
이 마을이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로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또 온다면 니스가 아니라 생폴드방스에서 아침을!
여행자를 위한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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