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거리에서 세잔의 아뜰리에까지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

물결처럼 부드럽게 시간을 건너는 도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남프랑스의 햇살을 머금은 이 고요한 도시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길모퉁이마다, 광장마다, 대로의 중심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언뜻 보면 단지 장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숨결과 예술가의 손길, 그리고 엑상이 걸어온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공식적인 분수의 갯수는 100개 이상 존재 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 대부분 로마시대 수도망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엑상프로방스, 물의 도시로 태어난 이유
엑상프로방스는 그 이름에서부터 물의 도시임을 암시한다. 로마시대의 이름은 Aquae Sextiae. ‘섹스티우스의 온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22년, 로마 장군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가 이 지역을 정복하고, 풍부한 지하 온천수를 기반으로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 이름이 붙었다.
이후로도 엑상은 수세기 동안 풍부한 수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도시다.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원은 도시 생존과 위생, 시민 생활의 근간이 되었고, 도시계획에 있어서도 분수 설치는 필수적이었다. 특히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 왕실과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다수의 장식용 분수가 설치되면서, 엑상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분수를 가진 도시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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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 로통드 분수 |
로통드 분수 (Fontaine de la Rotonde) 도시의 관문, 상징적 조형물
엑상의 분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로통드 분수다. 1860년에 완공된 이 대형 분수는 엑상 시내 중심가인 코르스 미라보(Cours Mirabeau) 대로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관광객 대부분이 이 분수에서 도시 여행을 시작한다.
분수 꼭대기에는 세 개의 여성 조각상이 서 있다. 각각 정의(Justice), 농업(Agriculture), 예술(Arts)을 상징하며, 엑상의 핵심 가치를 표현한다. 분수 아래에는 섬세한 조각이 들어간 동물상과 청동 장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분수 전체 지름은 약 32미터로 매우 웅장한 규모다.
로통드 분수의 설치 이유는 도시 이미지 재정립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프랑스 사회 속에서, 엑상은 이 분수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지금도 이곳은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쉼터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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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 이끼분수 |
이끼 분수 (Fontaine Moussue) 따뜻한 온천수가 흐르는 살아있는 분수
코르스 미라보 대로 중간쯤을 걷다 보면,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이끼로 덮인 이상한 바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끼 분수, 정식 명칭은 온천 분수(Fontaine d’Eau Chaude)다. 1734년에 건립된 이 분수는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따뜻한 온천수가 흘러나오며, 물의 온도는 연중 18~20도 정도를 유지한다.
이 따뜻한 물 덕분에 분수는 자연스럽게 초록빛 이끼로 덮이게 되었고, 그 모습은 신비롭고도 낭만적이다. 특히 겨울철,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 덕분에 분수는 마치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분수는 과거 엑상 시민들이 손을 씻고 채소를 씻는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시설이었다. 오늘날에는 그 기능보다도 자연과 인공의 조화, 시간의 누적이 만들어낸 미학으로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9개의 대포 분수 (Fontaine des Neuf Canons) 시민 공동체의 유산
또 하나의 상징적 분수는 바로 9개의 대포 분수다. 1691년에 제작된 이 분수는 코르스 미라보의 중심부,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한다. 분수는 이름처럼 아홉 개의 수도꼭지(노즐)에서 물을 토해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대포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분수는 실용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동시에 상징한다. 본래 목적은 목축용수 및 시민들의 생활용수 공급이었지만, 점차 도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게 된다. 지금도 이곳에는 종종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베르타스 분수 (Fontaine d’Albertas) 귀족의 미적 취향이 반영된 도시 예술
엑상의 분수들 중 예술성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수는 바로 알베르타스 분수다. 1745년, 당시 귀족이자 법률가였던 장 밥티스트 도 알베르타스(Jean-Baptiste d’Albertas)가 자신의 저택 앞 광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설치한 분수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이 뚜렷한 이 분수는 정교한 철제 난간과 섬세한 조각물로 꾸며져 있으며, 주변의 르네상스풍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며 프랑스 도시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황금 시간대에 이 광장을 찾으면, 부드러운 햇빛이 분수 위로 내려앉아 한 폭의 회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소규모 분수들의 매력
엑상프로방스는 이처럼 대표적인 분수들 외에도, 좁은 골목마다 숨겨진 작은 분수들은 동네 주민들에 의해 꾸며지거나 꽃병처럼 활용되기도 하며, 도시 전체가 마치 자연과 예술의 공동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엑상프로방스의 분수들은 그 자체로 기억의 그릇이다. 이 도시의 분수들은 단순한 조형물 그 이상이며, 시간을 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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