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햇살 아래, 아비뇽 교황청을 걷다 Avignon Palace of the Popes



 고요한 역사 속으로 들어간 하루 Avignon  Palace of the Popes


6월, 유럽의 햇살은 이미 한여름처럼 눈부셨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프랑스 남부의 햇살은 유독 부드럽고 따뜻하다. 바람은 라벤더 향을 머금고 지나가고, 골목마다 작은 창문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었다. 그런 풍경들 속에서 아비뇽(Avignon)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심장, 교황청(Palais des Papes) 앞에 섰다.

어딘가 압도적이면서도 위엄이 깃든 그 모습. 단순한 건물이 아닌, 시간 자체가 쌓인 듯한 거대한 석조의 궁전. 그것이 아비뇽 교황청이었다.


역사의 한가운데,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14세기 중엽, 유럽 교회사의 중심이 로마에서 프랑스로 옮겨졌던 그 드문 시기의 중심에 선 장소다. 우리는 ‘교황’ 하면 자동으로 로마를 떠올리지만, 1309년부터 1377년까지 약 70년간, 교황은 로마가 아닌 이곳, 아비뇽에 머물렀다.

이 기간을 역사에서는 “아비뇽 유수” 혹은 “교황의 바빌론 포로기”라 부른다. 정치적 갈등과 혼란 속에서, 교황은 로마를 떠나 프랑스 국왕의 영향 아래에 놓인 아비뇽에서 교황청을 운영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이 거대한 궁전은 그 시기에 건축된 것이다. 총 9명의 교황이 이곳에 머물렀고, 유럽의 신앙과 정치가 이곳에서 결정을 기다렸다.


6월의 강렬한 햇살 아래, 나는 그 역사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돌과 시간으로 지어진 성채

입구를 지나면 곧바로 느껴지는 묵직한 공기. 교황청 내부는 마치 중세로 이어지는 통로 같다. 거대한 석조 벽과 아치, 높은 천장, 검은 나무 문들… 그 모두가 무겁고 조용하다. 한편에는 전자기기를 들고 공간의 용도를 보여주는 영상을 신기한듯 들여다 보는 모습이 21세기임을 일깨워 준다.

교황청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베네딕투스 12세(Pape Benoît XII)가 건축한 엄격하고 금욕적인 ‘구 궁전(Palais Vieux)’, 그리고 그의 후임 클레멘스 6세(Clemens VI)가 지은 화려하고 장엄한 ‘신 궁전(Palais Neuf)’이다. 두 교황의 성향이 극명하게 다른 만큼, 건물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구 궁전은 수도원적인 느낌이 강하다. 벽은 담백하고 단단하며, 창은 좁고 높다. 클로이스터처럼 구성된 정원은 고요하며, 신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반면 신 궁전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꾸며놓은 벽화와 조각, 섬세한 석조 장식들로 가득하다. 특히 ‘콘실룸의 방(Salle du Consistoire)’과 ‘연회실(Salle de Banquet)’은 중세 권력의 정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곳에서, 시간은 돌 위에 새겨져 있었다.

햇살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벽에 무늬를 그리던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붉은 지붕, 론(Rhône) 강의 유유한 흐름, 그리고 생 베네제 다리(Pont Saint-Bénézet)의 아련한 곡선이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보였다.

햇살은 그저 따뜻한 빛이 아니라, 그 시절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교황들이 걷던 복도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고, 그 빛을 따라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그들이 남긴 침묵을 듣기라도 하듯이.



무너진 권위와 남은 아름다움

1377년, 교황 그레고리오 11세(Gregorius XI)가 로마로 돌아가며 아비뇽의 교황청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방 교회 대분열(Great Schism)이 이어졌고, 심지어 또 다른 교황이 이곳에 머무르며 ‘대립 교황’ 체제가 시작되기도 했다. 교회는 둘로 나뉘고, 신도들은 혼란에 빠졌다.

교황청은 점차 정치적 혼란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건축물은 미학과 신앙, 권력의 교차점으로써 위엄을 지켜냈다. 화재, 전쟁, 무관심 속에서도 돌은 남았고, 역사는 침묵 속에 말하고 있었다.

이곳은, 한때 모든 권위가 집중되었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권위의 무너짐조차 아름다움으로 품고 있었다.


교황의 방에서 내려다본 풍경


마지막으로 교황의 방에 들어섰다. 작고 단정한 방이었다. 벽에는 당시의 벽화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새와 나무, 별이 수놓인 천장. 당시 교황들이 이 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의 이름으로 세계를 움직였던 그들, 그러나 결국 인간이었을 그들.

그 창문 앞에 서니, 시선 너머로 아비뇽의 도시 전경이 펼쳐졌다. 붉은 기와 지붕, 조용한 거리, 아득한 강, 그리고 멀리 초록으로 물든 언덕들. 나도 모르게 한참을 바라봤다. 말없이.

아비뇽 교황청은 그런 곳이었다. 말보다는 침묵이, 장식보다는 그림자가, 권위보다는 고요함이 더 깊게 남는 공간.


다시 길 위에서

교황청을 나와 광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깥은 다시 6월의 활기찬 오후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분수대 옆에서 웃고 있었고, 거리의 음악가는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고딕 성채의 그림자가 광장 위로 길게 드리워졌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잔잔한 음악과 커피 향 사이로, 아까 그 교황의 방, 그 스테인드글라스, 그 햇살이 떠올랐다.


여행은 순간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를 남기는 일이다. 아비뇽 교황청은 내게 하나의 풍경이 아닌, 하나의 시간으로 남았다. 14세기의 돌벽과 21세기의 햇살이 겹쳐진 그 장소에서, 나는 지금을 느꼈고, 과거를 상상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과거의 시간을 걷는다.

그곳에서 현재를 더 또렷이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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